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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스님─ 관음기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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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암사 댓글 0건 조회 1,892회 작성일 14-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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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기도에 대하여
                  원오스님
관음 염불*
염불이나 정근하면
관음염불을 많이 수행하고 계심은
우리 불자들이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왜 관음염불 즉 관음신앙이 유독
우리 불자님들이 많이 신봉하는지에 대해
먼저 알야야 할 것은 구고구난의 자비를 베풀어
언제 어느곳이나 일심으로 중생이 부르고 염하면
바로 응답을 해주는 보살님이며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32응신으로 몸을 나투시어
시공을 초월하여 중생들을 구제해 주시는 유일한 보살님 이므로

우리는 누구나 어렵고 힘들면 관세음을 염하고
염하는 소리에 바로 응하여 줌으로 관세음이라 하였고
바로 구원을 청하는 불자를 구제하여 주는
보살님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관세음은 우리가 급하면 엄마! 하고 부르듯
원음으로 관세음을 부르고 있다고 보아 집니다.

불자님들이 가정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행할 수 있는 관세음 염불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많이 염하지만,
어떻게 하면 지극한 마음으로 일심의 염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염불 행자는 매일 정기적인 때를 정하여
30분 정도 시간에 합당한 향을 꽂고 단정히 앉아 합장한다
.
관음상이나 탱화, 사진이 없을 경우에는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염불함도 바람직 하다.

관세음보살의 염불을 꼭 고성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집안에서 작은 소리로 입끝에서 염불이
이루어 지게 하는 것이 마음을 모으는 데는 더욱 효과적이다.

처음에는 천천히 염하다가 차츰 차츰
명호를 부르는 속도를 빨리하여,
마침내는 명호의 앞뒤가 간격이 없을 만큼 되어야 한다.
들숨, 날숨에 관계없이 염불이 끊임없이 이어 지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마음가짐은 관세음보살로만 채워져야 한다.

번뇌가 일어나면 번뇌를 물리치려고 하지말고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그 자비 속으로 귀의하면 된다.
그리고 향이 다 타면 마음 속의 소원을
3번 반복하여 지긋이 기원하는 것이다.

일체 번뇌가 텅비고 관음으로 가득찬 마음의 기도는
그대로 관세음보살의 관하는 바가 되어
수행과 소원을 함께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러나 소원이 다급할 때는 입으로 관음을 염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바를 생각하면 된다.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를 찾듯이.
불치의 환자가 명의를 찾듯이.......

끝으로 옛 설화 한 편을 인용하여 가정에
불보살의 불상이나 탱화를 봉안하면 가정에 불화가 있고
불길하다는 속설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중국 제나라(550-577)에 손경덕 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가정에 관음상을 모시고 항상 공경해 섬겨온 관음 신자였다.
어느 때 손경덕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누명을 벗기 위해
일심으로 관음보살을 염송하였다.

어느날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와서 <구고관음경(救苦觀音經)>을 가리켜 주고
"이 경을 천 번만 일심으로 외우면 죽음을 면하리라"하였다.
손경덕은 이 경을 지성으로 외워 형장에
이르기 직전에 겨우 천번을 왜워 마쳤다.
형장에 이르니 형졸이 칼을 번쩍 들어 경덕의 목을 내리쳤다.

뜻밖에도 칼은 세 조각이 나면서 뿌러졌고
경덕의 몸은 흠하나 없었다.
세 번이나 칼을 바꾸어서 형을 집행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사실은 지체없이 황제에게 보고 되자
사면과 동시에 누명까지 벗게 되었다.

손경덕이 집에 돌아와서 관음상 앞에 경건히 예배하고
관음상을 살펴보니 관음상의 목에 칼 맞은 자국이 세 군데나 있었다.
관세음 보살이 대자비로써 경덕의 고통을 대신 받은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무수히 많으나
이 한편의 설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경덕의 집에 모셔진 관음상은 경덕의 원불(願佛)이였다.
이 원불은 믿는 자의 지극한 마음에 감응하여
그 죽음까지도 대신 받았던 것이다.

집안에 불상을 모심이 왜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말인가?
오히려 잦은 기도와 불상을 모심으로 해서
경견해지는 집안 분위기 불상에 예배를 통한 마음의 정화는
우리의 생활을 맑고 윤택하게 한다.

집안에서 사찰처럼
멋진 예불문과 공양을 올리지 못한다고 하여
배고픈 불보살이 노여움으로 벌이라도 내린다는 말이가?
적어도 불보살은 젯밥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하루 단 한 번의 지극한 합장 배례를
칭찬하고 보살펴 줄 자비의 대성(大聖)들이다.

납승은 오히려 권하고 싶다.
우리의 집안에다 관음상을 모시자고,
우리의 집안에다 원불을 봉안하자고,
신라, 고려 때의 우리 조상들이 집안에 불상을 모셨듯이.
그 관음상은 우리 손으로 갂아 만든 목불이라도 좋으리라.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라도 좋으리라.
다만 그 관음상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관음의 자비를 배우는 기도인이 된다면 족하리라.

단 5분의 시간이라도 분향하며 지성의 염원을 심어보자.
그 원이 이 몸에 충만하고,
이 집안에 충만하고,
이 법계에 충만하다면,
이 국토는 관음의 국토가 아닌가!

지성의 염원을 심는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관음전에 되지 않겠는가!
 
관음의 빛 속으로 중생의 빛이 향할 때
중생의 소리를 마음으로 포용하는 관세음!
지극한 마음의 기도 속에 관음은 이미 와 있다.
관음 대성은 지성의 기도인과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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